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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의 기본적인 세계관

한국 창세신화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며 생겨난

태초의 세상에 해가 두 개,

달도 두 개였다고 합니다.

귀한 해와 달이 두 개씩이면 좋은 일일까요?

신화에서 해와 달은 각기 더위와 가뭄,

그리고 추위와 홍수를 나타냅니다.

해와 달이 둘이면 극심한 더위나 추위,

또는 가뭄과 홍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요.

최초의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는 것이

한국 신화의 관점입니다.

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자연환경만이 아니었습니다.

포악한 지배자가 사람들 위에 군림했지요.

사나운 소와 말, 그리고 개를

아홉 마리씩 거느린 수명장자였습니다.

야생의 짐승을 최초로 길들인 인간!

그 힘으로 수명장자는

압도적인 권력자가 됩니다.

사람들이 가진 것을 휩쓸어갔지만,

감히 그와 맞설 사람은 없었지요.

 

그러던 와중에 변곡점이 생겨납니다.

수명장자가 하늘에 도전한 일이 그것입니다.

그는 하늘의 최고신 천지왕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이 세상에 나를 잡아갈 자가 있으랴!”

천지왕은 본래 지상의 일에 잘 개입하지 않았지만,

이 일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지요.

다섯 마리 용이 이끄는

금수레에 올라탄 천지왕은

번개장군, 벼락장군, 화덕진군,

풍우도사를 앞세우고

일만 군사를 이끌고서

수명장자한테로 들이닥칩니다.

그가 버드나무에 앉아서 조화를 부리니까

짐승들이 지붕 위에서 울부짖고

가마솥이 문밖으로 나와서 걸어다고 해요.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수명장자는

속절없이 무릎 꿇린 신세가 됩니다.

천지왕은 그 머리에 쇠테를 씌워서

깨질 듯한 고통을 가했지요.

하지만 수명장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종을 부르더니 이렇게 소리쳤다고 해요.

“내 머리가 너무 아프니 도끼로 깨라!”

그 말에 천지왕도 어이가 없어서

혀를 내둘렀지요.

“참 지독한 놈이로다.”

천지왕은 수명장자를 죽이는 대신

쇠테를 거두고서 돌아섰다고 합니다.

어떤 자료에서는 ‘두건’이라고도 해요.

무척 귀한 물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이 싸움? 악당이라지만

저 수명장자도 나름 매력이 있지 않나요?

최고신한테 당당히 도전하는 모습에서,

또 신의 권위에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모습에서

인간의 의기(意氣)를 보게 됩니다.

아직 법질서가 생겨나기 이전

적자생존 시절이었으니

그를 ‘악인’이라고만 볼 일도 아니지요.

이 싸움에서 주목할 것은

신과 인간의 질서에 대한 관점입니다.

세계 다수 신화와 달리 한국신화에서는

신과 인간의 층하가 분명치 않습니다.

인간은 그 자체 신성을 지닌 존재라서

신과 같은 반열로 인식되지요.

그 인간을 신은 함부로 해치지 않습니다.

천지왕도 수명장자를 꾸짖을 뿐

그대로 살려둡니다.

인간세상의 일은 인간에게!

그것이 한국 신화의 기본적인 세계관입니다.

 

사진출처 개혁신앙

 

이야기는 다시 이어집니다.

수명장자를 혼낸 천지왕은

지상에서 하룻밤을 지내다가

지상의 처녀 총명부인하고

인연을 맺게 되지요.

옥빗으로 머리를 빗는 소리에 반했다고 해요.

꽤나 낭만적입니다.

천지왕은 사흘 만에 하늘로 올라가고,

총명부인은 쌍둥이 아들을 낳습니다.

대별왕과 소별왕이었지요.

대별왕 소별왕은 천지왕이 남긴 박씨를 심은 뒤

그 덩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천지왕은 천근짜리 무쇠 활을 전해주지요.

무슨 뜻이었을까요?

이심전심(以心傳心)!

형제는 그 활을 가지고

떠오르는 해와 달을 하나씩 쏘아서

부서뜨립니다.

하늘에는 해와 달이 하나씩만 남게 됐지요.

그때 부서진 해와 달은

수많은 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대별왕 소별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해를 쏘는 화소는

동아시아 신화에서 널리 나타납니다.

자연에 대한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반영하는 내용이지요.

인간이 열악한 환경을 헤쳐내고

문명을 개척해온 역사가

거기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을 힘들게 하던 해와 달이 부서지면서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생겨나는 장면,

멋지지 않나요!

일종의 문화사적 ‘빅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천지왕은 해와 달을 쏘아 없앤 형제에게

중대한 과업을 내립니다.

이승과 저승을 맡아

질서를 세우는 일이었지요.

둘 다 이승을 원했던 형제는

시합을 벌입니다.

지혜를 다투는 수수께끼 시합에 이어서

꽃 피우기 시합을 하지요.

생명을 키워서 펼쳐내는 능력을

확인하는 과정에 해당합니다.

인간세상을 주재하기 위한

핵심 능력이지요.

대별왕의 꽃은 쑥쑥 잘 자라나는데

소별왕의 꽃은 시들어 갔습니다.

그때 소별왕이 형한테 말합니다.

“형님, 우리 잠이나

깊이 자보면 어떻습니까?”

형이 그 말대로 잠이 들자

아우는 꽃을 슬쩍 바꿔치기합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이겼다고 우깁니다.

그러자 형이 말하지요.

“정 그렇거든 이승을 맡아라.

네가 이승을 차지하면

인간세상에 살인 역적이 많고

도둑이 많으리라.

내가 마련하는 저승 법은

맑고 청량한 법이 될 것이다.”

이승을 차지한 소별왕은

법도를 엄하게 세운 뒤

수명장자를 능지처참해서 허공에 뿌립니다.

그 몸 조각은 모기가 되고

파리, 빈대가 돼서 세상으로 퍼졌지요.

저승을 맡은 대별왕은

그곳에 ‘맑은 법’을 이룩합니다.

저승은 한치의 어김도 없이

이승의 삶에 대한

응보를 받는 곳이 되었지요.

 

이런 결과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시합에서 더 큰 권능을 나타낸 것은

대별왕이었는데 능력이 부족한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합니다.

위계(僞計)와 편법에 의한 승리였지요.

소별왕은 위력으로써

세상을 다스리려 하지만

부작용이 생겨납니다.

수명장자가 모기와 파리로 남았다는 것은

세계질서의 불완전성과

역기능을 암시하지요.

중요한 것은 대별왕의 존재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힘과 관대함을 지녔던

진짜 능력자 말입니다.

그가 이승을 맡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 역할은 무화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이승에서 거꾸로 섰던 일이

저승에서 바로잡히고,

상처받은 생명이 새롭게 피어납니다.

대별왕이 저승을 맡은 것은

이렇게 하나의 ‘축복’이 됩니다.

신화의 묘미가 여기 있습니다.

신화의 시야는 거시적입니다.

삶을 넘어서 죽음 이후까지 내다보면서

세상의 본원적 질서와 정의를 말합니다.

자식한테 지상의 일을 맡긴

천지왕의 비전, 이승을 넘겨주고

저승을 선택한 대별왕의 비전,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