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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伽耶)의 신화 이야기

오늘은 가야(伽耶)의

신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가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일찍 멸망했지만

몇 백년을 이어온 나라입니다.

활발한 해외 교류에 나섰던 국제왕국이었지요.

가야의 시조는 김해김씨의 조상이기도 한

수로왕(首露王)입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에

그에 대한 신화가 기록돼 있지요.

 

사진출처 어린이조선일보

 

가야의 옛 땅 북쪽에 산봉우리가 있었는데

생김새가 거북이를 닮아서

‘구지봉(龜旨峯)’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촌장들을 비롯해

수백 명이 봉우리 밑에 모였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하늘이 나에게 여기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라고 명하셨다.

너희들이 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하고 춤추면 하늘에서

왕이 내려올 것이다.”

사람들은 왕이 온다는 말에 기뻐하며

그 말을 따랐습니다.

봉우리의 흙을 파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지요.

그 노래가 바로 ‘구지가(龜旨歌)’입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그러자 얼마 뒤 하늘로부터

자줏빛 줄이 드리워졌습니다.

줄 끝에는 붉은색 보자기로 싼

황금 상자가 있었지요.

 

그 안에는 황금 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다음날 그 황금알에서 여섯 명의 아이가 나왔지요.

아이들은 쑥쑥 자라서 열흘 만에 키가

9척이 됐다고 합니다.

얼굴이 용과 같고 눈동자가 두 겹이었다고 해요.

 

사람들은 그들 중 제일 먼저 나온 이를

‘수로(首露)’라고 불렀습니다.

수로는 새로운 나라 대가야의 왕으로 모셔졌고,

나머지 다섯 명도 왕이 됐지요.

이렇게 해서 여섯 가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수로왕 신화에서 왕이 하늘로부터 왔다거나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주몽 신화나 혁거세 신화와 비슷합니다.

하늘과 태양을 중시하는 사고를 볼 수 있지요.

봉우리 꼭대기에서 신을 맞이했다는 내용은

산에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신을 맞이하는 의식을 거행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불렀다는 ‘구지가’는

지도자의 탄생을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지요.

‘머리를 내놓아라’ 할 때

‘머리’는 바로 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연은 가야라는 나라가

사람들의 집단적 열망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수로왕은 사람들의 총의를 결집한 상태에서

지도자가 되었지요.

나라를 힘차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가야 신화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어지는 사연도 무척 흥미롭지요.

수로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데,

바다 건너에서 탈해라는 사람이 와서

왕의 자리를 넘기라고 요구합니다.

수로왕은 이를 거부했고, 둘 사이에 시합이 펼쳐집니다.

탈해는 보란 듯이 몸을 변해서 매가 되었지요.

수로왕은 곧바로 독수리로 변해서

매를 쫓았습니다.

탈해가 참새로 변하자 왕은

다시 새매가 되어 참새를 쫓았지요.

탈해는 수로왕의 능력에 굴복하고

길을 떠나 신라 땅으로 들어갑니다.

 

탈해는 뒷날 신라에서 왕이 된 인물입니다.

수로왕이 그를 가볍게 물리쳤다고 하는 데는

가야 사람들의 자긍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웃 나라인 신라보다 자기네가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지요.

 

수로왕의 관심은 멀리 바다 너머를 향해 있었습니다.

수로왕은 왕이 되고도

오랫동안 왕비를 두지 않았었는데요,

어느 날 하늘이 배필을 보낼 거라면서

사람들을 바닷가 섬으로 보냅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다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다가왔지요.

배에는 멀리 아유타국에서 온 여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수로왕은 그녀를 맞이해 왕비로 삼았지요.

그가 바로 김해 허씨의 조상인 허황옥입니다.

흔히 허황후로 불리지요.

 

허황후가 왔다는 아유타국은

인도 쪽에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로왕은 일찌감치 국제결혼을 한 것이지요.

그의 국가 경영 비전은

광대한 신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가야가 국제왕국으로 힘을 떨친 것은

지도자의 남다른 비전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야 신화에서 수로왕과 허황후의 결혼은

서로 다른 세력의 만남과 결합을 상징합니다.

이질적인 문화를 지닌 외부 세력과의 결합이었지요.

신화는 그 과정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삽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야 땅에 도착한 허황후를

수로왕한테 모시고 가려 했을 때였지요.

여인은 움직이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가벼이 따라가겠느냐?”

신하들이 수로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수로왕은 산 옆에 따로 행궁을 설치하고

예를 갖추어 허황후를 맞이합니다.

둘의 혼인도 거기서 거행됐지요.

 

이 내용은 어떤 뜻일지 궁금한데,

이치를 따져보면 의미심장합니다.

허황후의 행동은 당당한 자존감의 표현이고,

수로왕의 응대는 그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가치를 높인 것이지요.

이같은 과정을 거침으로써 허황후는

외부에서 왔음에도 나라의 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를 동반자로 삼은 수로왕의 영도력도

훨씬 커졌겠지요.

여기서 또 한번 수로왕의

남다른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국가 경영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기업이나 단체 경영도 마찬가지지요.

지도자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타 세력에 대한 대승적인 이해와 포용이라는 사실.

먼 옛날 한 나라의 창업주가 전해주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