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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산업의 출발점, 벨의 전화 특허

기술의 역사를 통틀어 경제적 가치를

가장 높게 매길 수 있는 특허는 무엇일까요?

기술사학자들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에 출원한 전화의 특허를 꼽습니다.

‘벨 전화 회사’는

1877년 필라델피아의 조그만 회사에서 출발해,

1885년에는 장거리전화를 전담하는 AT&T를

자회사로 출범시킵니다.

AT&T는 이후 100여 년 간

미국 전화 사업을 독점했는데요.

벨의 특허는 수백조 원,

아니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낳는

전화 산업의 출발점이었지요.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하지만 벨의 특허는 가장 논쟁적이기도 합니다.

벨이 특허를 낸 직후,

벨보다 먼저 전화를 발명했다는 소송이

무려 500여 건에 달했는데요.

하지만 이 소송에서 벨은

우선권을 인정받고 승리했습니다.

 

1876년 2월 14일, 엘리샤 그레이와 벨은

같은 날 전화기 특허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나중에 법정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레이는 아침 일찍 특허를 신청했고,

벨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신청했는데,

벨이 먼저 수수료를 지급해서,

벨의 특허가 먼저 검토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기술의 두 개 특허를 접수한 심의관은

두 사람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그레이는 ‘전화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다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특허 신청을 포기합니다.

거꾸로 벨은 이때부터 연구를 거듭해서

목소리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전화를

발명하게 됩니다.

 

그레이는 왜 특허를 포기했을까요?

그는 당대에 꽤 유명했던 전신엔지니어였습니다.

당시 전신은 도시와 도시를, 미국과 유럽을,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거대 통신망으로 운용되던,

가장 선진적인 통신기술이었습니다.

전신을 이용하면 수 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로도

모르스부호를 통해 순식간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전화는 깡통에 실을 매달아서

아이들이나 연인들이

장난감으로 갖고 놀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레이는 한 세대 안에

전화가 전신을 대체하는 경쟁 기술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요.

 

그런데 그레이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벨은

왜 전화를 고집했을까요?

벨은 전신기술자가 아니라,

청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사실 벨의 어머니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었는데요.

청각 기능 손상으로 발음이 부정확했던

어머니와 대화를 할 때면,

벨은 목소리의 진동을 느끼기 위해

어머니와 이마를 가까이 했고,

결국 수화도 배웠습니다.

말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는

벨에게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벨은 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연구했고,

고막의 떨림과 같은 메커니즘을

나중에 전화에 응용하기도 했습니다.

 

1873년 보스턴대 부설 웅변학교에서

음성 생리학 및 발성학 교수를 맡게 된 벨은

청각장애 학생 메이블 허바드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어머니,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부정확한 발음에

간절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던 벨.

그는 모르스부호를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목소리를 통해 소통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소리는 전신이 담을 수 없는

화자의 감정을 담을 수 있었고,

벨은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와 딸이

전화를 붙들고 수다를 떨면서 마음을 나누는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사실 벨도 전신을 개량하는 기술을

발명하려고 했었습니다.

여러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는 다중전신 기술이었죠.

벨은 연인 메이블의 아버지 가디너 허버드의

후원을 받고 있었는데,

당시 기술 발전을 꿰고 있던 사업가 허버드는

벨에게 다중전신을 발명하라고 종용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은 전신이지

전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실제로 전화는 처음에

전신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허버드는 벨의 전화 특허를 팔려고 했지만,

사겠다는 회사가 없었지요.

결국 벨은 1877년 허버드에게 돈을 빌려서

‘벨 전화 회사’를 차리는데,

첫 가입자는 5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가입자가 늘기 시작합니다.

전신을 보내려면 우체국에 가야 했지만,

전화는 집에서 집으로 바로 연결됐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허 취득 10년 뒤인 1886년,

미국 가입자는 15만 명을 넘어섰고

1892년에는 뉴욕과 시카고를 잇는

장거리 전화선이 개통됩니다.

그제야 전신회사들은 전화에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벨 전화 회사는 이미 ‘벨 시스템’이라 불리는

새로운 통신 시스템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벨은 전화기를 가장 먼저 발명한 사람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의 목소리가 지니고 있는

개성과 감성이,

풍부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기술이

전신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명확한 발음이더라도

청각장애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행복했을 벨.

그는 세상 사람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하는 미래를 상상했고,

주변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전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기술이 가장 큰 경제적 가치를 가져올까

고민하기 전에,

당신이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을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 즐거운 상상 속에

중요한 힌트가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