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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광섬유 레이저 생산기업 IPG Photonics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단 한 번도 위기라는

말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특히 2014년 이후 국제 유가 하락은

러시아와 같은 자원부국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경제의

끝없는 하방곡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산업용 광섬유 레이저

생산기업 IPG Photonics입니다.

 

IPG Photonics의 관련분야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무려 80%에 이릅니다.

 

사진출처  IPG Photonics

 

러시아 외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에 생산기지를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한국 등 세계 주요 기술선진국에

영업 지점을 두어

전 세계 3천 명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2009년부터 2013년 5년간

연매출 성장률이 23.12%로

동종업계의 8.07%를

훨씬 능가했으며 신흥국의 위기가

본격화된 2014년에도 매출은

18.8%, 순이익은 28.7%,

자산가치는 14.1%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성장세에 맞춰

2013년 포브스 선정

세계 5대 고속성장 테크기업

2014년 세계 최고 5대 중소기업

 

그리고 포춘 선정 세계

고속성장 100대 기업 중 8위에

올랐습니다.

 

경제 불황기 IPG Photonics가

나홀로 성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독보적인 기술력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IPG photonics의 창업자

발렌틴 가폰체프는

러시아 과학자입니다.

 

그는 1991년 당시 연금생활에

접어들 나이 53세에

과감하게 인생 2막을

시작했는데요.

 

세계 곳곳 연구가

막 시작되고 있는

전혀 새로운 분야에 뛰어 들어

사업화에 나섭니다.

 

바로 광섬유 레이저 개발이죠.

 

처음 그와 같이 사업을 시작했던

동료들은 러시아 시장에 익숙한

하드 레이저 생산 및 판매에

집중할 것을 원했습니다.

 

광섬유 레이저는

이제 막 초창기에 들어섰으며

설령 시작한다 하더라도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과 영국 기업들에 밀려

시장에서 낙오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동종 부문에서 백 배 이상의

비약적인 기술 혁신을

그것도 단 몇 개월 만에

해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창업했던 동료들까지

일부 떠나 단 10명의 제자만이

남은 상태였지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요?

 

발렌틴 가폰체프는

단 몇 개월 만에 무려 10와트의

세계에서 독보적인 레이저 개발에

실제로 성공합니다.

 

상품화 가능한 레이저 용량

100밀리 와트의 백배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전 인생과

인맥을 걸고 거금의 대출을

받아내고 연구에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한 결과였는데요.

 

1993년 IPG Photonics의 전신

IRE-POLYUS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술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기술보호입니다.

 

IPG Photonics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술을 보호해

회사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기술개발 후 처음으로

이탈리아 통신회사

Italtel로부터 75,000달러의

주문을 받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주문의 대가가

기술 이전이었습니다.

 

당시로써는 매력적인

요구였지만 자칫 회사가

사라질 수도 있는

제안이었습니다.

 

IPG Photonics

기술은 팔 수는 없지만

생산 장비는 팔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이에 이탈리아 회사는

독일에서 생산한다는 조건을

맞제안하면서 거래가

성사됩니다.

 

이렇게 IPG Photonics의

두 번째 생산기지가

1994년 독일 부르바흐에 탄생합니다.

 

이후 IPG Photonics는

1997년 美 거대 통신기업

BellSouth의 5백만 가구

광섬유망 설치를 위한

1,2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면서

큰 도약을 하게 됩니다.

 

BellSouth가 내건 사양인

-40~80도 온도를 견뎌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은

IPG Photonics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거두며

2000년 현재의 그룹 본사인

IPG Photonics Corporation가

미국에서 출범하지요.

 

동시에 메릴리 린치와 APEX 등

북미와 유럽의

주요 투자 기업 및 은행으로부터

약 1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는데도 성공합니다.

 

 

성공의 축배를 들기에는

너무 일렀습니다.

 

IPG의 주요 부품사인 발광다이오드를

공급하던 미국 JDSU사가

2001년 거액의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2000년 7천만 달러치를

한꺼번에 주문하면서

제때 부품을 인수하지 못할 경우

 

3,5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벌금을 내어야 한다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로

IPG의 주요 고객사들이

연쇄부도한터라 구매계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IPG Photonics는 절체절명 위기에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합니다.

 

우선 미리 다져두었던

미국의 정관계 인맥을 최대한 동원하여

소송을 유리하게 마무리하지요.

 

그리고 모든 경쟁기업들이

긴축경영에 들어갈 때

오히려 투자 확대에 들어갑니다.

 

우선 1억 달러의 지분을 매각하여

발광다이오드를 비롯한

부품 자체생산 체제를 갖춥니다.

 

발광다이오드를 비롯한

부품 자체생산 체제를 갖추죠.

 

이로부터 바로 3년 뒤에

이 부문에서 JDSU를 추월했고

2015년 부품의 95% 이상을

자체 생산하기 이르렀습니다.

 

이 자생적 생태계 덕분에

IPG는 비용과 시간의 절감,

뛰어난 품질 관리 및 기술 보존

등으로 비교 불가능한 경쟁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통신 등 IT업종에 제한된

상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의 옥스퍼드 시에

20헥타르 규모의 초현대식

연구 생산 단지를 건설합니다.

 

여기서 산업용 절삭 및

용접이 가능한 무려 10k와트의

레이저를 생산하면서

현재 IPG의 고객은

폭스바겐, GM, 미추비시, 보잉,

필립스, 질렛, 팍스콘 등

제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지요.

 

53세에도 시들지 않았던

창업자의 과감한 도전정신,

기술 혁신과 보존을 위한 노력,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전환하는

불굴의 의지가 IPG Photonics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독보적 기술이 있다면

아무리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다는 교훈을

깨닫게 해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