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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성 진통제 중독과 치료 문제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말을 다들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텐데요. 16세기 로마의 히포크라테스라는 명성을 얻었던 스위스 의사 파라켈수스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약의 양면성을 강조했던 그 역시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며 만병통치약으로 복용했던 약이 있습니다. 바로 ‘아편’인데요. 아편은 기침을 낫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며, 강력한 진통 효과가 있어 치료약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그 중독성이 강해 전쟁의 시발점이 된 것은 물론 ‘마약’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됐죠. 그렇다면 아편 그리고 치명적인 마약으로 지정된 아편의 추출물인 모르핀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오늘은 치료와 중독의 기로에 선 마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1840년에 일어난 제1차 아편 전쟁은 중국의 아편 단속으로 발발된 전쟁입니다. 당시 중국의 최대 수출품은 차(茶)였고, 영국의 최대 수출품은 모직물과 인도산 면화였는데요. 중국의 수출 초과 상태가 지속돼, 영국으로서는 차 수입을 결제할 은(銀)이 부족했고,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수출했습니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중국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아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아편에 중독된 중국인들로 인해 '동방의 병든 남자'라는 뜻의 동아 병부(東亞病夫)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되었는데요. 영국은 인도에서 재배하던 양귀비로 아편을 제조해 청나라에 수출하면서 중국을 서서히 망가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아편 전쟁은 중화제국이  자국의 한 줌도 안 되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군대에게 굴욕적으로 참패한 역사로 기록됐고, 또 지금까지도 중국이 광 서신정 때부터 마약 범죄에 대해서 ‘절대 무관용’이라는 강경대응을 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아편 중독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아편을 피우면 아픈 것이 씻은 듯이 낫고 일시적으로 힘이 강해졌기에 중독자의 상당수가 아편을 약으로 인식한 것이 중독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양귀비의 꽃이 떨어지고 나면 그 자리에 꼬투리가 생기는데요. 그 꼬투리가 다 익기 전 상처를 내면 즙이 나오는데, 이 즙을 공기 중에서 건조한 것이 바로 아편입니다. 그리고 아편은 모르핀, 코데인 등의 물질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르핀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추출물입니다. 모르핀 역시 단기적으로는 행복한 느낌이 들게 하고 아픈 몸을 낫게 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중독의 수렁에 빠지게 하는 등 뛰어난 약리작용 못지않은 강력한 중독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렇다면 모르핀의 강력한 중독성을 없애고 진통작용만 남길 수는 없었을까요?

 

의학자들은 오랜 시간 이에 대한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1874년, 영국인 화학자 라이트가 모르핀에 아세틸 기를 결합한 물질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1898년, 독일의 제약기업인 바이엘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요. 바이엘은 라이트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하여 출시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라이트가 발견한 화합물은 가래를 제거하는 진해 효과가 탁월한 데다 출시 당시에는 중독성이 확인되지 않았는데요. 또한 이 약을 먹으면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여 ‘헤로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죠. 이런 이유로 바이엘은 이 신약 샘플을 의사들에게 보내고 뛰어난 효력을 광고했습니다. 하지만 헤로인이 출시되고 몇 년 후, 환자들에게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약을 끊음과 동시에 정신착란, 불안, 현기증과 같은 금단현상이 일어나 아프지 않은데도 계속 약을 찾는 것은 물론 과량 복용으로 인한 사망에 이르는 환자들까지 등장하면서 1970년대에 이르러 헤로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미국, 스웨덴 등의 연구진이 인간의 뇌 속에서 모르핀이 작용하는 기전을 밝혀냈는데요. 우리 몸에서 자가 생성되는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의 구조와 모르핀의 구조가 유사해 모르핀을 투여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죠. 엔도르핀은 외상을 입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방출되어 고통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따라서 모르핀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우리 몸은 엔드르핀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스스로 엔도르핀을 생성하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약물이 투여되지 않으면 엔도르핀이 생성되지 않아 견디기 힘든 불쾌감을 느끼고 이렇게 마약의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것이죠. ‘진통’과 ‘중독’은 결국 같은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을 없앨 수 없던 건데요. 한때 암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방책으로 헤로인이 사용되기도 할 정도로 고통 완화에 대한 효과는 인정받았으나, 완벽한 치료법이 아니라는 점과 또 헤로인으로 인한 중독자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자 현재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투여가 금지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마약의 중독성 및 부작용에 대한 인식으로 간혹 모르핀을 비롯한 ‘마약성 진통제’가 꼭 필요한 경우에도 약 복용을 매우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통제를 복용하면 ‘중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데요. 하지만 요즘 같은 고령화 사회에서 만성통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질환 중 하나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마약성 진통제 사용에 유독 보수적인데요.

 

세계 보건기구(WHO)와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는 한국은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적게 사용하므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의 방해 요인을 제거하고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죠. 사실 마약성 진통제의 중독률은 약 0.0001~0.19%로 중독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요. 통증 자체는 면역력을 감소시켜 각종 질병에 잘 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흔히들 비교적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소염진통제 또한 위장관 부작용, 신장 독성 등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극심한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진통제를 처방받아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유병장수 시대에 필요한 방편일 것입니다. 또 머지않은 미래에 부작용과 중독성이 없는 또 다른 ‘모르핀’류가 개발돼 인류에게 ‘최고의 진통제’로 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