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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인기있는 굴소스, 이금기

중화요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굴소스’는

독특한 풍미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손꼽히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대표적 라오 즈하오, 이금기입니다.

 

이금기는 1888년

중국 광둥성 주하이시에서 식당을 하던

이금상이라는 사람이 만든 회사인데요.

그 탄생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한때 고향인 광둥성 장먼시에서

제법 큰 식당을 경영했던 이금상은

돈을 노린 동네 건달들의 횡포에

마카오와 인접한 주하이시로 터전을 옮깁니다.

그리고 현지 특산물인 굴을 사용한 요리로

작은 식당을 여는데요.

낯선 땅에서 하는 장사가 잘될 리가 없었죠.

 

시름이 많았던 그는 어느 날

딴생각을 하느라 냄비에 넣고 끓이던 굴즙을

태우고 맙니다.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걸쭉한 갈색으로 변해버린 뒤였죠.

망친 굴 즙을 버리려던 그는

풍기는 좋은 향에 한번 맛을 보는데요.

그 맛이 일품이었다고 합니다.

본능적으로 탄 굴즙의 상업적 가치를 알아본

이금상은

바로 남아있던 굴즙을 일부터 태운 뒤

병에 담아 팔기 시작했는데요.

전세계인 즐겨먹는 굴소스가 탄생되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팔기 시작한 굴 소스가 큰 인기를 끌자,

1888년 이금상은 자신의 이름 ‘이금(李錦)’에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를 뜻하는 기(記)를 붙여

굴 소스 전문 제조 회사인 ‘이금기(李錦記)’를

설립합니다.

매출 10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의 굴소스 업체,

소스분야의 라오 즈하오 이금기는

이렇게 탄생했는데요.

 

하지만 이금기의 성공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02년 잘 나가던 주하이의 공장이

원인 모를 화재로 불탄 후

이금상은 공장을 마카오로 옮겼는데요.

하지만, 고난은 이어졌습니다.

남중국해 일대에서 원재료인 굴을

마카오로 가져오는 항로에 해적이 들끓어서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이죠.

이때 목숨을 걸고 굴을 실어 나르는 일을

도맡은 사람이

이금상의 3남인 이조남(李兆南)입니다.

 

그는 이금상이 사망한 후, 2대 경영자가 되는데요.

중일전쟁, 국공내전 등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시장보다는

전 세계 화교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홍콩으로 눈을 돌립니다.

1946년에는 본사를 아예 홍콩으로 옮기고

굴소스의 품질개선에 심혈을 기울이는데요.

1940-50년대 전란의 시대에도

상대적으로 안정된 홍콩에 본사를 두고

품질개선에 주력한 덕에

화교들에게 명성을 얻으면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지요.

 

이후 3세 경영자로 회사를 물려받은

이조남의 큰아들 이문달(李文達)은

이금기를 세계적인 소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그는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100-1=0”전략을

수립했는데요.

먹거리는 100번을 잘 만들다가도

단 한 번의 사소한 실수에도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뜻이죠,

또한, 이문달은 누구도 하지 못했던

굴소스의 대중화에 성공하는데요.

당시만 해도 굴소스는 홍콩에서

한 병 가격이 노동자 한 달 생활비의

10%에 달하는 고가의 식재료였습니다.

이문달은 대량생산시스템을 구축해

저가의 굴소스를 출시함으로써

시장을 크게 확대시키는데요.

중미수교의 기회를 틈타

당시 마오쩌뚱이 닉슨에게 선물한

판다를 내세운 판다 표 굴소스를

미국 시장에 출시해 성공을 거둔 것도 그의 솜씨죠.

 

1990년대 초에는

조부인 이금상의 고향 광둥성 장먼에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초대형공장을

세우고 내수 시장 확대에도 성공하는데요.

이금기의 사훈인 ‘사 리급인(思利及人)’과

‘음수 사원(飮水思源)’을 만든 것도 이문달이죠.

이윤을 챙기더라도 타인을 먼저 헤아리고

그 이익이 생기게 해 준 뿌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금기는 현재 이금상의 4대손인 이혜중이

경영하고 있는데요.

전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4대째 가족경영입니다.

여기엔 이문달 사장 시절에 만든

가족경영에 대한 원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문달은 분기별로 가족회의를 열고

여기에서 결정된 주요 사항들로

가족의 경영 참여 여부, 가족의 역할,

의무 등을 명시한

가족헌장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가족이라도 이금기에 들어오려면

최소 3년간 다른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고,

입사 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말단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요.

입사 후에도 직무 평가가 좋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야 하고요.

이 씨 일가는 한 명의 부인과 한 가정만 허용하며

혼외 가족이 생기면 이사회에서 제외된다는

규정도 만들었는데요.

CEO가 되고 싶다면 이혼을 해서도,

바람을 피워서도 안 됩니다.

그 결과 이금기는 4세, 5세 경영자들이

등장하는 과정에서도

큰 문제없이 가업을 있어나갈 수 있었죠.

 

지금의 중국은 부모의 재산만을 믿고

흥청망청 살아가는 재벌2세,

즉 ‘푸얼다이’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명성에 걸맞은 역사와 기업문화,

가족경영 원칙을 지닌 이금기에

중국인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은데요.

바른 리더가 기업 존속의 필수요소임을 강조하는

이금기의 교훈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