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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난민 문제

2018년 제주 공항을 통해

5백60명의 예멘 난민이 몰려들어와

난민 문제가 새삼 뉴스의 초점이 된 바 있는데요,

저도 곳곳을 취재 다니면서 많은 난민을 만났습니다.

이라크 취재 중 바그다드 난민수용소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난민 소녀와 소년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세우면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후손들인데요,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바그다드 난민수용소에서

하루하루를 어렵게 지내는 고달픈 일상이

표정에서 그대로 묻어납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팔레스타인 노인은

“내 한 평생을 피란 보따리를 싸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내가 죽어 무덤에 묻혀야

안식처를 구할 수 있을까?”하며 한탄하더군요.

 

전쟁과 폭력, 굶주림 등 21세기 지구촌의

여러 만성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가

난민 문제인데요,

난민을 돕는 유엔의 국제기구인

유엔 난민기구(UNHCR)가

해마다 6월에 발표하는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지구 상에서 전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머무는 난민 숫자는

2천5백40만 명에 이릅니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 명을 약간 웃도는데요,

한국 총인구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난민으로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21세기

오늘의 세계 현실입니다.

문제는 난민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14년 말까지만 해도 전 세계 난민 숫자가

2천만 명을 넘진 않았는데요,

2015년 2천1백만 명, 2016년 말 2천2백60만 명,

2017년 말엔 2천5백40만 명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 왔습니다.

지난 1년 사이에만 난민 숫자가 280만 명

더 늘어난 셈이지요.

 

그렇다면 어디서 이 많은 난민이 생겨난 것일까요?

21세기 지구촌 분쟁지역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난민을 내고 있는 곳은

중동 시리아인데요,

2017년 말 기준 시리아 난민 숫자는

무려 630만에 이릅니다.

전 세계 난민 4명 가운데 1명이 시리아 난민이죠.

2011년 시리아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구촌 최대 난민을 낸 지역은

팔레스타인이었는데요,

지금은 시리아가 팔레스타인을 앞선 형국입니다.

시리아 난민들은 전 세계 125개국에 퍼져나갔고,

한국에도 1천2백 명가량의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와 있죠.

시리아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국가는 터키인데요,

무려 344만 명의 난민이 들어와 있기에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터키 정부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다음으로 많은 난민을 낸 국가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난민 숫자는 260만 명입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을 넘는 139만 명이

아프간 이웃 국가 파키스탄에 머물고 있지요.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다음으로

난민이 많은 국가는 아프리카의 남수단인데요,

난민 숫자는 240만 명에 이릅니다.

남수단은 2017년 한 해 동안만 한정해서 본다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많은 숫자의 난민을

배출한 국가로 꼽히죠. 한 해 동안 무려 100만 명의

새로운 난민이 생겨났습니다.

이웃나라 우간다엔 100만 명의 남수단 난민이

하루하루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지요.

그 밖의 주요 난민 배출국은 미얀마,

소말리아 등이 꼽힙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남미 베네수엘라의 경제사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약 230만 명에 이르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브라질, 콜롬비아 등 이웃나라로 넘어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뺀다면

대량 난민이 생겨나는 까닭은

결국 유혈분쟁, 무력충돌이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탓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하기 어렵습니다.

전쟁이 대량 난민을 낳는 주범인 셈이죠.

 

문제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난민을

반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난민들에게

그나마 열린 자세를 보여 왔던 나라가 독일인데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05년도부터 집권하면서

지금껏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정책을 펴왔기에

서구 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97만 명의 난민이

독일에 머물고 있지요.

그러나 독일마저도 이즈음은

빗장을 걸어 잠그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갈수록 독일 국가재정에 부담이 더해지고

크고 작은 여러 사회적 갈등을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 통에 어렵사리 조국을 떠난 난민들은

낯선 타국에서 현지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 탓에

어엿한 직업을 갖기도 어렵지요.

대부분의 난민들은 그저 국제구호기관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야 하는 형편입니다.

 

국경을 넘은 난민과 달리, 국경을 넘지 못한

이른바 국내 피란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엔 난민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국내 피란민은 정확히 4천만 명에 이릅니다.

국내 피란민은 국제법상 국경을 넘은

난민(2,540만 명)보다

1천5백만 명쯤 더 많은 셈이지요.

국경을 넘은 난민들에겐 국제구호기관들의

인도주의적 도움을 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는 달리

국내 피란민은 국제사회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생존의 벼랑 끝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7년 동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자 여러 다른 사정으로

국경을 넘지 못한 채 국내에서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에 떠는 시리아 사람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분쟁지역 취재를 하면서 난민들이 머무는 수용소를

여러 군데 가봤는데요. 그야말로 난민수용소는

현대 전쟁이 그려내는 우울한 초상화 가운데 하나지요.

수도나 전기시설이 잘 안 되어 있고,

화장실 같은 기본시설도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난민수용소엔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띕니다.

유엔 난민기구(UNHCR) 자료에 따르면,

난민들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들의 비율이 80%쯤,

많게는 90%에 이릅니다.

많은 성인 남자가 정부군 또는 반군으로 징집되거나,

유혈충돌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기에

수용소 안 남성 비율은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난민수용소는

안전한 곳이 결코 아닙니다.

전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 난민수용소로 오기까지

온갖 고초를 겪은 여성들은 수용소 안에서

또 다른 폭력과 공포를 겪기 십상입니다.

 

난민들이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

해결책도 답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인지...

부디, 영원한 물음표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